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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전력시장·계통운영 규범, 근본적으로 개편해야”
송고일 : 2025-10-20[에너지신문] “국내 도매전력시장 제도와 관련 규정들은 서른 살 성인이 초등학교 때 옷을 입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시장 상황에 맞지 않는 낡은 옷은 부쩍 커버린 몸을 수용할 수 없고, 여기저기 덧대고 기워 누더기가 돼버렸다.”(손양훈 인천대 명예교수)
“불합리한 전력거래소 비용평가규정으로 인해 수백억원의 손실을 입은 민간발전사가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법원은 이 규정이 법규명령적 성격을 갖고 있어 규정의 내용 자체는 법원의 판단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비용평가규정이 법규명령이라면 개정시 입법예고와 규제심사 등 절차적 통제를 받아야 하나, 한 번도 이런 절차를 거친 적이 없다. 더구나 전력거래소 회원인 민간발전사가 문제가 된 비용평가규정의 개정을 제안할 수 없고, 관련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도 차단돼 있어 손실이 지속적으로 커지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민간발전업계 관계자)
20일 한국자원경제학회와 한국에너지법학회가 공동 개최한 ‘전력시장 선진화를 위한 법적기반 강화방안’ 세미나에서는 연간 70조원 이상의 전력이 거래되는 현행 도매전력시장의 운영을 규율하는 법적 체제의 낙후성, 절차적 투명성과 공정성 결여 등에 대한 비판과 불만이 다양하게 표출됐다.
▲ 전력거래소 출범 25년이 됐으나 낡은 전력계통 운영 규범이 시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전력거래소 본사 사옥 전경. 지난 2001년 전력거래소 출범 당시 한전에서 분리된 6개의 발전공기업 밖에 없었던 발전사업자는 2024년말 6617개로 증가했으며, 그 중 95% 이상의 절대 다수가 민간 신재생사업자이고, 중앙급전 발전사업자 중에서도 민간사업자의 비중이 대폭 확대되는 등 지난 25년간 전력시장의 구조는 크게 변화됐다.
그러나 전력시장의 운영을 규율하는 제도와 규정들은 한전과 발전공기업간의 전력거래만 있던 시기에 임시로 만들어진 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현 상황에 맞는 근본적 개혁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한편 최근 민간발전사들이 제기한 연료비 소송과 같이 전력시장 운영과 비용평가를 둘러싼 법적 분쟁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전력거래와 계통운영의 근거가 되는 ‘전력시장운영규칙’ 및 그 하부규정들의 법적 성질에 대해서는 대법원 판례가 정립돼 있지 않고, 학문적으로도 논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아 전력시장 참여자들 간 소모적 분쟁이 증가하고 전력시장의 건전한 발전이 저해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전력시장운영규칙의 법적 성질은 이 규칙의 해석과 효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분쟁해결 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으로 정리가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전기사업법 제43조제1항에 근거해 전력거래소가 제정한 시장운영규칙(하위 규정인 비용평가세부운영규정 포함)의 법적 성질에 대해서는 최근 일부 법원의 판례에서와 같이 법규명령의 성격이 강하다는 견해와 약관규제법의 적용을 받는 약관으로 보아야 한다는 입장이 맞서고 있으며, 한국거래소의 ‘유가증권시장상장규정’과 유사한 사적 자치규범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백옥선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주제발표를 통해 전력시장운영규칙은 규정의 제정권자가 행정기관이 아니라는 점에서 법규명령으로 볼 수 없으며, 또한 전력거래소를 전력거래의 일방 당사자로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약관으로 볼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약관규제법에서는 약관은 ‘계약의 한쪽 당사자가 다수의 상대방과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일정한 형식으로 미리 마련한 계약’으로 정의하고 있다.
백 교수는 전력시장운영규칙은 전력시장 시장참여자들간 시장질서 유지를 위해 마련된 사적 자치규범에 해당된다는 견해를 밝혔다. 다만 순수한 자치규범이 아닌 전기사업법에 따른 공적 규제 요구가 반영된 ‘규제적 자치규범’이며,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전력시장 참여자의 권익에 영향을 미치는 규범의 제정·변경·폐지에 대해서는 비례원칙의 준수, 절차법적 사항의 준수 등이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고 밝혔다.
박진표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전력거래소의 운영이 거래의 일방 당사자인 한전에 유리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민간 회원사의 참여가 크게 제한되어 있어 공정성과 절차적 투명성이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전기사업법의 백지위임하에 발전사들의 수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용량요금계수, 정산조정계수, 송전제약, 출력제어 등이 자의적으로 결정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전력거래소 운영에 대한 실효성 있는 법적 통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 변호사는 민간발전사들이 특히 ‘비용평가세부운영규정’에 대해 정부, 한전, 전력거래소에만 규정 개정 제안권을 부여하는 등 공정성 결여와 회원사의 절차적 권리 침해가 심각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를 시정하기 위해 상위 규정인 시장운영규칙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AI와 에너지대전환의 시대를 맞아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전력인프라의 급속한 전환이 이뤄지고, 심각한 계통위기로 인해 경제급전 원칙 마저 위태로운 등 전력시장 출범 당시와 비교해 시장환경이 근본적으로 변화된 상황에서 현실에 맞지 않는 전력시장 제도와 법적 기반의 정비 필요성이 제기됐다.
특히 그간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던 전력시장운영규칙과 그 하위 규정들의 법적 성질 문제를 본격적인 논의의 장으로 끌어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한편 이날 참석한 대부분의 전력산업계 관계자들은 전력시장운영규칙과 그 하위 규정들의 법적 성질에 관계없이 전력거래소 회원사들의 절차적 권리 보장과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공정성·투명성 강화가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했다. 민간발전사들이 이를 위한 전력시장운영규칙 개정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귀추가 주목된다.
출처 : 에너지신문(https://www.energy-news.co.kr/)
